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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슐로스, 사무실 없이 50년을 이긴 남자

2026-09-11

뉴욕 월스트리트 어딘가, 창문도 제대로 없는 작은 사무실 한 칸. 책상 하나, 파일 캐비닛 몇 개, 그리고 주가 시세를 훑어보는 남자 한 명. 화려한 트레이딩 데스크도, 애널리스트 군단도 없었다. 월터 슐로스는 그런 방식으로 반세기 가까이 돈을 굴렸다.

그가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 슐로스는 정규 대학 교육을 마치지 않은 채 월스트리트에서 잔심부름 같은 일부터 시작했고, 그레이엄의 강의를 들으며 가치투자라는 틀을 처음 접했다. 이후 그레이엄과 뉴먼이 운영하던 회사, 그레이엄-뉴먼에서 실무를 배웠다. 같은 시기 그곳을 거쳐간 인물 중에는 훗날 훨씬 더 유명해진 워런 버핏도 있었다. 두 사람은 같은 스승 밑에서 같은 원칙을 배웠지만, 이후 걸어간 길은 사뭇 달랐다.

버핏이 사업의 질적 가치를 깊이 파고들고 훗날 대규모 자본을 운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면, 슐로스는 그레이엄이 강조했던 아주 단순한 원칙, 즉 자산가치 대비 싸게 거래되는 주식을 찾아 폭넓게 나눠 담는 방식을 거의 원형 그대로 유지했다. 그는 회사를 직접 찾아가 경영진을 만나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대신 재무제표와 주가, 장부가치를 비교하는 숫자 작업에 집중했다.

혼자, 그리고 오래

1955년경 슐로스는 자신의 투자조합을 시작했다. 직원은 사실상 없었고, 나중에는 아들 에드윈이 합류해 부자가 함께 운용하는 구조가 됐다. 비서도, 리서치팀도, 컴퓨터 기반 스크리닝 시스템도 화려하게 갖추지 않은 채, 그는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종목을 발굴해 수십 개 종목에 나눠 담는 방식을 수십 년간 반복했다.

이 방식의 핵심은 화려함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었다. 소수 종목에 집중해 큰 확신을 걸고 베팅하는 방식이 아니라, 개별 종목에 대한 확신이 다소 낮더라도 저평가된 자산이 언젠가는 시장에서 재평가될 것이라는 통계적 믿음을 바탕으로 광범위하게 분산했다. 한 종목이 틀려도 포트폴리오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였다.

알려진 바로는 슐로스는 이런 방식으로 수십 년에 걸쳐 시장 평균을 웃도는 성과를 냈고, 그 기간의 길이 자체가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한두 해의 뛰어난 수익률보다 40년 넘게 큰 손실 없이 복리를 쌓아 올렸다는 사실이 더 의미가 컸다. 그는 레버리지를 거의 쓰지 않았고, 시장을 예측하려 하지 않았으며, 거시경제 전망이나 산업 트렌드를 근거로 매매하지 않았다. 그저 싼 것을 사고, 시장이 그 가치를 알아줄 때까지 기다렸다.

화려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

슐로스가 남긴 이야기 중 자주 회자되는 것은 그가 투자를 대하는 태도의 소박함이다. 그는 큰 사무실도, 값비싼 리서치 자료도 필요 없다고 여겼다. 필요한 건 회사 연차보고서를 꼼꼼히 읽는 인내심과, 시장의 소음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가짐이었다. 버핏은 훗날 그를 두고 성실함과 정직함, 그리고 원칙을 지키는 일관성을 높이 평가하는 발언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슐로스의 이야기가 지금도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투자자는 더 많은 정보, 더 빠른 시스템, 더 복잡한 전략이 우위를 만든다고 믿는다. 하지만 슐로스는 정반대의 증거였다. 그는 복잡함을 더하지 않고, 오히려 덜어내는 쪽을 택했다. 싼 주식을 사고, 여러 개로 나누고, 오래 버틴다는 단순한 규칙만으로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이겨냈다.

그는 은퇴할 때까지도 특별히 유명해지길 원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대형 자산운용사도, 미디어 노출도, 화려한 수익률 발표회도 없었다. 그저 매일 아침 그 작은 사무실에 앉아 숫자를 들여다보는 일을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그 반복이 쌓여 하나의 긴 기록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