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를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한때 이 둘과 나란히 거론되던 세 번째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릭 게린(Rick Guerin)이다. 멍거와 함께 여러 투자를 함께했고, 버핏이 신뢰하는 파트너 그룹 안에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설적인 투자자’를 이야기할 때 버핏과 멍거는 늘 나오지만 게린의 이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일화는 투자 역사에서 꽤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다.
같은 눈, 다른 속도
게린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버핏과 멍거는 그의 판단력을 상당히 높게 평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세 사람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방식으로 저평가된 기업을 찾아다녔고, 실제로 함께 투자한 사례들도 있다. 겉으로 보기에 세 사람의 실력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차이는 다른 데 있었다. 버핏과 멍거는 부자가 되는 데 서두르지 않았다. 게린은 좀 더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했다.
이 차이는 실제 투자 방식에서 레버리지의 사용으로 드러났다. 버핏은 일찍부터 빌린 돈으로 투자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수익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유혹이 있어도, 레버리지는 단 한 번의 나쁜 시기에 모든 것을 앗아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게린은 이 원칙을 버핏만큼 철저하게 지키지 않았고, 신용을 활용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1973~1974년, 시장이 무너졌을 때
1970년대 초중반 미국 증시는 큰 폭의 하락을 겪었다. 정확한 낙폭이나 기간을 숫자로 재현하기보다는, 이 시기가 장기간에 걸쳐 주가가 큰 폭으로 떨어진 약세장이었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우량주라도 상당한 하락을 피하지 못했던 시기다.
레버리지 없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던 투자자에게 이런 하락은 고통스럽지만 버틸 수 있는 일이다. 주가가 떨어져도 강제로 팔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 시장이 회복되면 buy-and-hold 전략은 다시 제자리를 찾는다. 실제로 버핏과 멍거는 이 시기를 그런 식으로 통과했다.
하지만 신용으로 주식을 산 투자자는 다르다. 담보로 잡힌 주식의 가치가 일정 수준 아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마진콜을 건다. 추가로 돈을 넣거나, 아니면 보유 주식을 강제로 팔아야 한다. 문제는 이 강제 매도가 시장이 가장 바닥에 가까운, 가장 팔면 안 되는 시점에 일어난다는 점이다. 알려진 바로는 게린이 바로 이 상황에 놓였고, 버핏이 보유하고 있던 벅셔 해서웨이 주식의 상당 부분을 그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고 전해진다. 판단이 틀려서가 아니라, 버틸 자금이 없었기 때문에 팔아야 했던 것이다.
같은 확신, 다른 결말
이 일화가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게린이 어리석은 투자자였기 때문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벅셔 해서웨이의 가치를 정확히 알아본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 확신의 방향이 아니라 확신을 뒷받침하는 구조였다. 레버리지를 쓰면 확신이 옳아도 시간이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오래 저평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버핏과 멍거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 비이성적인 기간을 버텨낼 수 있는 구조, 즉 빚 없는 포지션을 고집했다.
버핏은 이후 여러 인터뷰나 주주서한 성격의 언급에서 게린의 사례를 두고, 똑똑한 사람이 부자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대체로 인내심 부족이나 성급함, 그리고 그로 인한 레버리지 사용 때문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멍거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이 이야기를 여러 차례 언급했다고 전해진다. 정확한 발언의 원문이나 인용 시점은 자료마다 다르게 소개되기도 해서, 여기서는 그 취지만 옮긴다.
사라지지 않은, 다만 덜 보이는 이름
게린이 이후 완전히 실패한 투자자로 남은 것은 아니다. 그는 이후에도 투자자로서 활동을 이어갔고, 개인적인 삶에서도 계속 판단력을 발휘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벅셔 해서웨이라는, 수십 년에 걸쳐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익률을 기록한 자산을 그 상승이 본격화되기 전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로 남았다. 같은 안목을 가진 세 사람 중 두 사람의 이름만 남고 한 사람의 이름은 각주로 밀려난 이유는, 결국 무엇을 알아보느냐가 아니라 그 앎을 얼마나 오래 버텨낼 수 있는 구조로 뒷받침했느냐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