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IT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인도 출신 이민자 모니시 파브라이는 어느 날 워런 버핏의 이야기를 접했다. 버핏이 오랜 기간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과를 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그 방법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설명해왔다는 사실이 그를 사로잡았다. 파브라이는 공학과 창업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지만, 투자에 관해서는 스스로 새로운 이론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의 결론은 단순했다. 이미 검증된 방법이 있는데 왜 새로 만들려고 애쓰는가.
1999년 그는 자신의 자금과 소수 지인들의 돈을 모아 파브라이 인베스트먼트 펀드를 시작했다. 특이한 점은 펀드의 수수료 구조였다. 관리보수를 거의 받지 않고, 일정 수익률을 넘는 초과 수익에 대해서만 성과보수를 가져가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는 그가 존경하던 초기 버핏 파트너십의 구조를 그대로 옮겨온 것이었다. 운용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벤저민 그레이엄의 안전마진 개념, 버핏의 집중투자, 그리고 소수의 확신 있는 아이디어에 크게 베팅하는 방식을 그는 굳이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동전 던지기의 비유
파브라이가 즐겨 설명하는 개념 중 하나가 “앞면이면 내가 이기고, 뒷면이어도 크게 잃지 않는다”는 비대칭적 베팅이다. 그는 이것을 종종 동전 던지기에 비유했다. 일반적인 도박은 이기면 얻는 것과 잃으면 잃는 것이 비슷한 크기지만, 좋은 투자 기회는 하방이 제한되어 있는 반면 상방은 열려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런 기회를 찾아내려면 결국 사업의 내재가치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야 하는데, 그 순간은 시장이 공포에 질려 있거나 어떤 산업 전체가 외면받고 있을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는 아이디어의 개수보다 질을 중시했다. 한 해에 살펴보는 수백 개의 기업 중 실제로 매수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고, 대신 확신이 선 소수의 종목에는 포트폴리오의 상당 부분을 집중적으로 배분했다. 이는 분산투자를 통해 위험을 줄이라는 일반적인 조언과는 거리가 있는 태도였지만, 파브라이는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종목을 여러 개 보유하는 것보다, 깊이 이해한 소수의 종목에 집중하는 편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버핏과의 점심
파브라이의 이야기에서 자주 언급되는 일화는 자선 경매를 통해 워런 버핏과의 점심 식사 자리를 낙찰받은 일이다. 그는 이 자리를 단순한 팬미팅이 아니라 배움의 기회로 삼았고, 이후에도 버핏과 찰리 멍거의 사고방식을 자신의 언행과 투자 원칙에 꾸준히 녹여내려 했다. 그가 여러 강연과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한 표현 중 하나가 “복제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태도였다. 많은 투자자들이 자신만의 독창적인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끼지만, 파브라이는 이미 오랜 시간 검증된 원칙을 겸손하게 따르는 것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보았다.
실수와 그로부터의 배움
물론 그의 투자 인생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파브라이는 자신의 저서와 강연에서 판단이 빗나갔던 사례들을 숨기지 않고 언급해왔다. 특정 산업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매력적으로 보이는 밸류에이션만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가 손실을 본 경험, 혹은 경영진의 자본배분 능력을 과대평가했던 경험 등을 그는 공개적으로 되짚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실수 자체보다, 그 실수를 어떻게 복기하고 다음 판단에 반영하는가였다. 이는 그가 따르던 그레이엄-버핏 전통에서도 핵심적으로 다뤄지는 태도이기도 했다.
파브라이 인베스트먼트 펀드는 이후 여러 개의 파트너십 형태로 구조가 변화했지만, 그 근간에 있는 철학—싸게 사고, 이해한 것에만 집중하고, 하방이 제한된 기회를 기다린다는 원칙—은 초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새로운 것을 발명한 사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던 좋은 지도를 성실하게 따라간 사람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