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FRI 9:00–16:00 · SAT/SUN CLOSED | 카톡 tujac | 213-599-7359 LA · ORANGE COUNTY · ONLINE WORLDWIDE
TUJAC TRADING EDUCATION

빌 루안, 버핏이 문을 닫으며 남긴 이름

2026-09-13

1969년, 워런 버핏은 자신이 운용하던 버핏 파트너십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고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제는 그를 믿고 돈을 맡겼던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파트너십이 사라지면 이들은 갑자기 자기 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막막해질 상황이었다. 버핏은 이들에게 그냥 돈을 돌려주고 끝내는 대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소개해주기로 했다. 그 사람이 빌 루안이었다.

빌 루안은 버핏과 벤저민 그레이엄의 컬럼비아 대학 강의를 함께 들었던 인연이 있는 인물이다. 그레이엄이 가르친 ‘안전마진’과 ‘내재가치’라는 개념을 공유한 사람이었고, 버핏은 오랫동안 그의 투자 철학과 판단력을 지켜봐 왔다. 파트너십을 정리하면서 버핏이 고객들에게 공개적으로 추천한 유일한 운용역이 바로 루안이었다는 사실은, 당시 월가에서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의 고객을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넘긴다는 것 자체가 흔치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이다.

루안은 이 신뢰에 응답하기 위해 세쿼이아 펀드를 설립했다. 시점은 1970년으로 알려져 있다. 공교롭게도 펀드가 출범한 직후 시장은 소위 ‘니프티 피프티’로 불리던 대형 우량주들의 거품이 꺼지며 큰 폭으로 하락하는 국면을 맞았다.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루안은 단기 성과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배운 원칙, 즉 사업의 본질적 가치를 이해하고 그보다 싸게 살 수 있을 때 매수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는 종목 수를 많이 늘리기보다 자신이 깊이 이해한 소수의 기업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했고, 이는 이후 세쿼이아 펀드가 오랫동안 유지한 운용 스타일의 근간이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쿼이아 펀드가 초기부터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상당한 비중으로 편입했다는 사실이다. 당시 규정상 한 종목에 대한 비중 제한이 있었음에도, 루안은 버크셔에 대한 확신을 근거로 예외적으로 높은 비중을 유지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단순히 친분 때문이 아니라, 버핏이 만들어가던 회사의 구조와 경영 방식에 대한 독자적인 분석과 신뢰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세쿼이아 펀드는 수십 년에 걸쳐 시장 평균을 웃도는 성과를 기록한 펀드 중 하나로 꼽히게 되었고, 이는 공개된 장기 운용 실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루안이 남긴 것은 단순히 좋은 수익률만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업에는 손대지 않는다는 원칙, 그리고 남의 돈을 맡았을 때 그 책임의 무게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를 실천으로 보여준 인물이었다. 버핏이 자신의 고객들을 그에게 맡긴 것도 결국 이런 태도에 대한 신뢰였을 것이다. 화려한 언변이나 잦은 매매로 시장의 주목을 받기보다, 묵묵히 자신이 확신하는 몇 개의 기업을 오래 들고 가는 방식. 그것이 빌 루안이 세쿼이아 펀드를 통해 보여준 투자자의 초상이었다.

루안 커니프 앤 골드파브라는 운용사를 통해 세쿼이아 펀드를 이끌었던 그는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 펀드를 지켰고, 그의 뒤를 이은 후배 운용역들 역시 같은 철학을 이어받아 펀드를 운용해왔다. 한 사람의 신뢰가 다음 사람에게로, 그리고 다시 그 다음 세대의 투자자들에게로 이어진 흔치 않은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