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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리 에베이야르 — 국경을 넘어선 가치투자자의 인내

2026-09-28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이런 시기마다 미국 밖 시장에서 버려진 자산을 주워 담던 프랑스 출신 펀드매니저가 있었다. 장마리 에베이야르(Jean-Marie Eveillard)는 퍼스트이글 글로벌 펀드를 운용하며, 남들이 손절하고 떠난 자리에서 오히려 가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오랜 기간 시장을 이겼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화려한 수익률 자체보다, 남들과 반대로 갈 때 감수해야 했던 고립감과 그것을 버텨낸 태도에 있다.

프랑스식 사고를 미국 시장에 가져오다

에베이야르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공부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금융업에 발을 들였다. 당시 월가의 주류였던 성장주 중심, 미국 중심 투자 문화와는 결이 다른 배경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는 벤저민 그레이엄 식의 가치투자 철학을 받아들이면서도, 투자 대상을 미국 기업에 국한하지 않았다. 유럽과 아시아를 포함한 전 세계 시장에서 저평가된 기업을 찾는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이례적이었다.

닷컴 버블, 홀로 남겨진 시간

1990년대 후반 기술주 열풍이 절정에 달했을 때, 에베이야르가 운용하던 펀드는 그 흐름에 올라타지 않았다. 성장성 높은 인터넷 관련 주식 대신, 여전히 저평가된 전통 산업이나 해외 기업을 들고 있었다.

그 결과 펀드 수익률은 한동안 시장 평균에 크게 뒤처졌다.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이 이어졌고, 그를 둘러싼 회의적인 시선도 커졌다. 시장 전체가 한 방향으로 쏠려 있을 때 다른 판단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론으로는 쉬워도 실제로는 매일 압박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차라리 고객을 잃는 편이 원칙을 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취지의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펀드 규모가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투자 기준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다.

버블 붕괴 이후, 판단이 증명된 순간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상황은 뒤바뀌었다. 고평가됐던 기술주들이 폭락하는 동안, 그가 보유했던 저평가 자산들은 상대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보였다. 시장을 따라가지 않았던 몇 년의 시간이, 뒤늦게 다른 의미로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 사례가 자주 인용되는 이유는 단순히 결과가 좋았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기업의 내재가치와 시장가격 사이의 간극을 보는 원칙을, 지역과 업종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적용했다는 점이 더 중요하게 평가된다.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

퍼스트이글 글로벌 펀드의 운용 방식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특정 국가나 산업에 대한 선입견 없이 저평가 여부만을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태도로 이어졌다.

  • 미국 시장이 고평가 국면일 때는 비중을 줄이고 해외로 시선을 돌리는 유연함
  • 단기 성과보다 원금 보전을 우선하는 보수적인 리스크 관리
  • 이해하기 어려운 산업이나 불투명한 회계를 가진 기업은 배제하는 원칙

그는 수익을 극대화하기보다, 손실을 줄이는 데 더 무게를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접근은 화려하진 않지만, 변동성이 큰 국면마다 상대적으로 덜 흔들리는 결과로 이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내라는 자산

에베이야르의 커리어에서 가장 자주 회자되는 부분은 운용 성과의 숫자가 아니라, 시장과 다른 판단을 내렸을 때 감내해야 했던 시간의 길이다.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 단위로 이어진 소외의 기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세운 원칙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가치투자라는 개념은 많은 투자자들이 알고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겪는 고립과 의심의 시간을 실제로 견뎌내는 사람은 드물다. 장마리 에베이야르의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언급되는 이유는, 바로 그 인내의 구체적인 사례를 남겼다는 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