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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렘 왓사, 인도 이민자가 캐나다에서 버핏을 다시 만든 방법

2026-09-26

1970년대 인도에서 캐나다로 건너온 한 청년이 보험회사를 인수해, 훗날 사람들이 그를 두고 ‘캐나다의 워런 버핏’이라 부르게 만들었다. 프렘 왓사(Prem Watsa)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할 때 홀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보험을 산 게 아니라 ‘자금’을 산 것이었다

왓사가 1985년 무렵 페어팩스 파이낸셜(Fairfax Financial)의 전신이 된 회사를 인수했을 때, 그는 보험업 자체보다 보험이 만들어내는 구조에 주목했다. 보험사는 고객에게서 먼저 보험료를 받고, 사고가 나야 그 돈을 지급한다. 그 사이 시간 동안 회사 손에 쥐어져 있는 돈을 ‘플로트(float)’라고 부른다.

이 플로트는 남의 돈이지만, 당장 갚을 필요가 없는 돈이다. 왓사는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에서 보여준 방식—보험 영업 자체의 이익보다 그 플로트를 어떻게 굴리느냐가 진짜 승부처라는 것—을 캐나다라는 다른 시장에서 그대로 재현하려 했다.

남들과 반대로 걸었던 순간들

왓사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꾸준함보다 오히려 몇 번의 극단적인 베팅이었다. 그는 시장이 낙관에 취해 있을 때 종종 정반대의 포지션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2000년대 중반 미국 신용시장의 위험을 우려해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을 활용한 헤지 포지션을 쌓았고, 2008년 금융위기 국면에서 이 판단이 결실을 맺었다고 알려져 있다.
  • 시장 전반이 낙관적일 때 포트폴리오 전체를 방어적으로 재편해, 몇 년간 수익률이 저조하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입장을 쉽게 바꾸지 않았다.

이런 결정들은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늘 ‘틀린 베팅’처럼 보였다. 몇 년씩 실적이 부진하고 주주들의 인내심이 바닥날 즈음에야 비로소 그 판단이 맞았다는 게 드러나는 식이었다. 왓사 본인도 자신이 단기 성과로 평가받는 것을 편안해하지 않았다고 알려져 있다.

버핏을 참고하되, 버핏을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다

왓사는 공개적으로 버핏과 버크셔 해서웨이를 자신의 모델로 언급해왔다. 보험 플로트로 장기 투자 재원을 마련한다는 큰 틀은 분명 버핏에게서 빌려온 것이다.

하지만 페어팩스는 버크셔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매크로 베팅과 헤지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버핏이 개별 기업의 내재가치에 집중하며 시장 타이밍을 거의 논하지 않는 쪽이라면, 왓사는 금리·인플레이션·시장 전반의 위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훨씬 적극적으로 포트폴리오에 반영해온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민자 출신 경영자가 캐나다에 남긴 것

인도에서 캐나다로 이주해 자수성가한 배경 때문에, 왓사는 캐나다 경제계에서 상징적인 인물로 자주 소개된다. 페어팩스는 캐나다를 넘어 인도, 중동 등 신흥시장에도 꾸준히 투자해왔는데, 이는 그의 출신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많다.

페어팩스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인도 시장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여온 것도, 단순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넘어 왓사 개인의 서사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결과보다 태도가 남긴 것

왓사의 이력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그의 베팅이 늘 곧바로 옳았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몇 년씩 시장과 반대로 가며 비판을 견뎌야 했던 시기도 분명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세운 원칙—보험 플로트를 장기 자본으로 삼고, 남들의 낙관이나 비관에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는 태도—을 오랫동안 고수해왔다. 그 태도 자체가, 어쩌면 그가 남긴 가장 분명한 유산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