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여름, 벤저민 그레이엄은 이미 월스트리트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투자자였다. 그가 운용하던 그레이엄-뉴먼 파트너십은 몇 년째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을 내고 있었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강의도 하고 있었다. 그는 숫자에 밝았고, 기업의 재무제표를 남들보다 훨씬 꼼꼼히 읽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1929년 10월의 대폭락 앞에서는 다른 투자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레이엄은 당시 레버리지를 쓰고 있었다. 자기 자본만으로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빌린 돈을 얹어 포지션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시장이 오르는 동안에는 이 구조가 수익을 배가시켜 주었지만, 폭락이 시작되자 정반대로 작동했다.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졌고, 담보로 잡힌 자산의 가치가 줄어들면서 추가 증거금을 요구받는 상황이 반복됐다. 1929년부터 1932년 바닥에 이르기까지 그가 운용하던 자금은 거의 70% 가까이 증발했다. 파산까지 몇 걸음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손실의 규모 자체보다, 그 손실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자각이었다. 그레이엄은 분명 저평가된 기업을 골라냈다고 생각했다. 재무제표를 분석해서 내재가치보다 싸게 거래되는 주식을 사들였다. 그런데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에도, 시장의 광기와 레버리지의 압박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는 훗날 이 시기를 돌아보며, 자신이 얼마나 순진하게 시장의 합리성을 믿고 있었는지를 인정했다. 좋은 기업을 골라내는 안목만으로는 부족했다. 언제 그 판단이 틀릴 수 있는지, 틀렸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대비가 없었던 것이다.
대공황의 잔해 속에서 그레이엄은 다시 투자를 재건해야 했다. 이 시기에 그가 몰두한 질문은 단순했다. 어떻게 하면 내가 틀렸을 때도 크게 다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바로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이었다. 기업의 진짜 가치를 최대한 보수적으로 추정하고, 그 추정치보다 충분히 낮은 가격에 살 때만 투자한다는 원칙이다. 여기서 핵심은 ‘충분히 낮은 가격’이라는 여유분이다. 아무리 꼼꼼하게 분석해도 오차는 생기기 마련이고, 예측하지 못한 사건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안전마진은 그 오차와 불확실성을 흡수하는 완충장치였다.
1934년 그레이엄은 데이비드 도드와 함께 증권분석을 출간하면서 이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흥미로운 건 이 책이 나온 시점이다. 시장이 여전히 공포에 질려 있던 대공황의 한복판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주식이라는 자산 자체에 등을 돌리던 시기였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레이엄은 오히려 냉정하게 가격과 가치의 괴리를 측정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시장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일수록 안전마진을 확보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역설도 여기서 함께 나왔다.
그레이엄이 만약 1929년의 폭락을 겪지 않았다면, 안전마진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명확한 형태로 정립됐을지는 알 수 없다. 이론은 책상 위에서도 만들어질 수 있지만, 자신의 자본이 실제로 녹아 없어지는 경험은 다른 층위의 각인을 남긴다. 그는 숫자가 맞아떨어지는 것과 그 숫자가 실제로 자신을 보호해주는 것 사이의 간극을 몸으로 배웠고, 그 간극을 메우기 위해 평생의 투자 철학을 재구성했다.
이후 워런 버핏을 비롯한 수많은 투자자들이 그레이엄의 이 개념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어받았지만, 정작 그 출발점은 화려한 통찰이 아니라 파산 직전까지 몰렸던 한 사람의 뼈아픈 실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