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지금 돌아봐도 기이할 정도였다. 이른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라 불리던 우량 성장주 50개 종목에 돈이 몰렸고, 사람들은 “이 회사들은 어떤 가격에 사도 괜찮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깨지기 시작할 무렵, 캐나다 출신의 한 애널리스트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모두가 사랑하는 주식 말고, 모두가 버린 주식은 어떨까.
그 사람이 데이비드 드레먼이다. 그는 훗날 ‘역발상 투자(Contrarian Investment Strategy)’라는 개념을 대중적인 책으로 정리해낸 인물로 알려져 있으며, 저PER·저소외주 투자라는 접근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니프티 피프티의 붕괴가 던진 질문
드레먼이 투자업계에 발을 들인 시기는 성장주에 대한 맹신이 극에 달했던 때였다. 많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이 유명 우량주의 미래 성장성을 거의 의심하지 않았고, 그 결과 주가는 실적 대비 지나치게 높은 수준까지 올라갔다.
이후 시장 전반이 큰 폭의 조정을 겪으면서, 한때 ‘절대 지지 않는다’고 여겨지던 종목들도 큰 폭으로 하락하는 모습을 보였다. 드레먼은 이 과정을 지켜보며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시장의 ‘합의된 믿음’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얼마나 틀릴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애널리스트들의 예측, 왜 자꾸 빗나가는가
드레먼이 주목한 것은 전문가들의 실적 전망이었다. 그는 애널리스트들의 이익 예측치가 실제 결과와 상당한 괴리를 보이는 경우가 반복된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고, 이런 예측 오차가 투자자들의 심리와 결합해 주가를 과도하게 밀어올리거나 끌어내린다고 보았다.
즉, 시장이 “이 회사는 계속 잘 나갈 것”이라고 확신하는 종목은 기대가 너무 높아 작은 실망에도 크게 흔들리고, 반대로 “이 회사는 끝났다”고 낙인찍힌 종목은 기대가 바닥까지 낮아져 있어 작은 긍정적 소식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논리였다.
이 지점에서 그의 전략의 핵심이 나온다. 시장의 과도한 비관이 반영된, PER(주가수익비율)이 낮은 소외된 종목을 찾아 투자하는 것이다. 화려한 이야기도, 대중의 관심도 없는 주식들, 그러나 숫자로 보면 저평가되어 있는 기업들이었다.
역발상이라는 말의 진짜 의미
여기서 중요한 오해를 짚을 필요가 있다. 드레먼의 역발상 투자는 ‘남들과 무조건 반대로 하라’는 식의 투자가 아니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군중의 과도한 심리적 반응, 즉 지나친 낙관과 지나친 비관이 가격에 왜곡을 만든다는 것이었고, 그 왜곡을 체계적인 기준으로 걸러내려 했다는 점이다.
그는 단순히 인기 없는 주식을 아무거나 사는 것이 아니라, 저PER·저PBR(주가순자산비율) 같은 측정 가능한 지표를 기준으로 삼아 심리적 과잉 반응이 있었던 종목군을 구분하려 했다.
이런 접근은 당시 주류였던 효율적 시장 가설, 즉 “시장 가격은 이미 모든 정보를 합리적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학계의 주장과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었다. 드레먼은 시장 참여자들이 합리적이기보다는 심리적 편향에 자주 휘둘린다는 쪽에 무게를 두었다.
책으로 남긴 논쟁, 그리고 그 이후
드레먼은 자신의 관찰과 주장을 여러 저서를 통해 정리했고, 이 중 ‘역발상 투자전략’으로 번역되어 소개된 책이 국내 투자자들에게도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책에서 투자자 심리, 애널리스트 예측의 한계, 저평가 종목의 반등 패턴 등을 다루며 자신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데이터를 제시했다.
그의 주장이 학계에서 모두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효율적 시장 가설을 지지하는 쪽에서는 그의 분석 방법론과 데이터 해석에 대해 반박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행동재무학이라는 분야가 이후 학계 안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자리 잡는 과정에서, 드레먼이 실무자로서 제기했던 문제의식은 분명 한 축을 차지하고 있었다.
소외된 것에서 가치를 읽는다는 것
드레먼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가 복잡한 공식이나 비밀스러운 정보에 기대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는 그저 사람들이 왜 특정 주식을 사랑하고 특정 주식을 미워하는지, 그 감정의 패턴을 관찰했을 뿐이다.
모두가 한 방향을 바라볼 때, 그 반대편에 서서 숫자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 이것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이름이 ‘역발상’이라는 단어와 함께 기억되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