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뉴욕의 한 자선 만찬 자리에서 한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름은 데이비드 아인혼. 그는 그린라이트캐피털이라는 자신의 펀드를 통해 이미 몇 년째 가치투자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이 날의 발언은 조금 결이 달랐다. 그는 청중 앞에서 올렌 파이낸셜이라는 상장사의 회계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선 행사에서 나온 이 발언은 이후 몇 달에 걸쳐 파장을 일으켰고, 아인혼은 “숫자를 믿지 말고 숫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봐야 한다”는 자신의 투자 철학을 공개적으로 증명한 셈이 되었다.
가치투자자, 그러나 공매도자
아인혼은 흔히 워런 버핏 계보의 가치투자자로 분류되지만, 그의 방식은 버핏과는 결이 다르다. 버핏이 좋은 기업을 싸게 사서 오래 들고 가는 쪽이라면, 아인혼은 저평가된 기업을 사는 동시에 고평가되었거나 회계적으로 의심스러운 기업을 공매도하는 롱숏 전략을 구사했다. 그린라이트캐피털은 이런 방식으로 설립 초기부터 시장의 평균을 웃도는 성과를 냈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정확한 수익률 수치는 시기마다 다르고 공개된 자료도 제한적이므로, 여기서는 구체적 숫자보다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고했는지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의 접근에서 흥미로운 지점은, 공매도를 단순히 “떨어질 것 같은 주식에 베팅하는 행위”로 보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는 공매도 아이디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재무제표를 몇 달씩 파고들었고, 회사의 사업보고서 각주, 회계 처리 방식의 미묘한 변화, 경영진의 발언 사이의 모순을 찾아내는 데 공을 들였다. 그에게 공매도는 도박이 아니라 또 하나의 리서치 집약적 투자였다.
리먼브라더스, 그리고 침묵하지 않은 사람
아인혼의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8년 금융위기 직전 리먼브라더스에 대한 공개적인 문제 제기였다. 그는 리먼의 자산 평가 방식, 특히 부실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장부에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공개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리먼 경영진은 그의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고, 월가의 상당수도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몇 달 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했고, 아인혼이 지적했던 자산 평가의 허점은 사후적으로 여러 분석에서 다시 언급되었다.
이 사건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그가 “맞혔다”는 데 있지 않다. 대형 투자은행을 상대로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상당한 평판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행동이었다. 월가에서는 침묵이 곧 안전이라는 암묵적 규칙이 있었고, 큰 기관을 정면으로 지목하는 것은 소송이나 업계 내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인혼은 자신의 리서치에 확신이 있을 때는 그 확신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는 쪽을 택했다. 이는 그의 성격이자 동시에 그의 투자 철학의 연장선이었다.
확신과 인내, 그리고 그 대가
다만 아인혼의 이야기가 늘 성공으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다. 그는 이후에도 여러 차례 특정 기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공매도 논리를 제시했지만, 시장이 그의 판단대로 움직이지 않아 오랜 기간 손실을 감내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린라이트캐피털의 성과 역시 2010년대 후반 들어 부진한 시기를 겪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가 고수해온 가치투자 및 공매도 전략이 저금리·고성장주 장세와 잘 맞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그의 방식이 가진 근본적인 특징이다. 그는 시장의 유행을 좇기보다, 자신이 리서치를 통해 세운 논리를 오래 붙들고 가는 스타일이었다. 이 방식은 리먼브라더스 사례처럼 시대와 맞아떨어질 때는 극적인 결과를 냈지만, 시대의 흐름과 어긋날 때는 긴 인내의 시간을 요구했다. 아인혼 본인도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전략이 늘 시장과 동행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인정한 바 있다.
숫자를 의심하는 습관
아인혼을 관통하는 하나의 태도가 있다면, 그것은 재무제표에 적힌 숫자를 최종 결론이 아니라 질문의 출발점으로 본다는 점이다. 매출이 늘었다면 왜 늘었는지, 이익이 개선됐다면 그 이익이 실제 현금흐름과 일치하는지, 경영진의 설명이 이전 분기의 설명과 논리적으로 이어지는지를 끝까지 따져 묻는 습관이다. 이런 태도는 화려하지 않지만, 시장이 놓치기 쉬운 균열을 가장 먼저 발견하게 해주는 힘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