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무렵 미국 펀드 업계에서 브루스 버코위츠라는 이름은 꽤 무겁게 다뤄졌다. 그가 운용하던 페어홀름 펀드는 한동안 동종 카테고리 대비 압도적인 성과를 냈고, 모닝스타 같은 평가기관에서 ‘올해의 매니저’급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 성공 자체보다, 그 성공을 만든 방식이 그대로 다음 위기의 씨앗이 되었다는 데 있다.
버코위츠의 운용 철학은 처음부터 단순했다. 수백 개 종목에 분산해서 시장 평균을 따라가는 방식을 그는 신뢰하지 않았다. 대신 정말로 이해했다고 확신하는 소수의 기업에 펀드 자산의 상당 부분을 몰아넣었다. 이런 접근은 워런 버핏이나 찰리 멍거가 즐겨 이야기하던 ‘집중투자’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종목을 스무 개, 서른 개씩 들고 있으면 그중 어느 하나도 깊이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여섯 개 기업에 집중하면 그 기업의 사업 구조, 경영진, 위험 요인을 훨씬 촘촘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위기 이후, 남들이 피하던 자리로
페어홀름이 특히 주목받은 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국면이었다. 시장 전체가 금융주를 기피하던 시기에 버코위츠는 오히려 그 반대편에 섰다. 부실 우려로 주가가 크게 짓눌려 있던 대형 금융회사들을 펀드의 핵심 비중으로 편입한 것이다. 논리는 명확했다. 시장이 극단적인 공포에 질려 있을 때야말로 기업의 실제 가치와 주가 사이에 가장 큰 괴리가 생긴다는, 전형적인 역발상 가치투자의 문법이었다.
이 베팅은 한동안 놀라운 성과로 돌아왔다. 시장이 서서히 안정을 찾으면서 그가 담았던 금융주들의 주가도 회복됐고, 페어홀름은 업계 최상위권 수익률을 기록하는 펀드로 이름을 알렸다. 언론은 그를 ‘이 시대의 버핏’에 가까운 인물로 묘사하기도 했다. 소수 종목 집중, 대중과 반대로 가는 용기, 그리고 실제로 증명된 성과.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그의 방식은 한동안 정답처럼 보였다.
확신이 오판으로 바뀌는 순간
하지만 집중투자의 본질적인 위험은 바로 그 확신 자체에 있다. 소수 종목에 크게 베팅한다는 건, 그 판단이 틀렸을 때 손실도 그만큼 집중된다는 뜻이다. 이후 페어홀름은 특정 기업, 특히 재무구조가 복잡하고 리스크가 컸던 몇몇 종목에 지나치게 큰 비중을 실었다가 큰 폭의 손실을 겪었다. 시장 전체가 나쁘지 않은 시기에도 펀드의 성과가 크게 뒤처지는 국면이 이어졌고, 한때 그를 향했던 찬사는 상당 부분 비판으로 돌아섰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버코위츠가 잘못된 원칙을 따랐던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여전히 자신이 깊이 이해했다고 믿는 기업에 집중했고, 대중의 공포와 반대로 움직였다. 문제는 ‘깊이 이해했다’는 확신 자체가 늘 정확한 건 아니라는, 아주 근본적인 한계였다. 아무리 오래 분석하고 아무리 논리적인 근거를 쌓아도, 개별 기업 하나에 펀드의 운명을 크게 걸어놓는 순간 그 판단 하나의 오류가 전체 성과를 좌우하게 된다.
같은 무기, 다른 결과
버코위츠의 궤적을 놓고 보면, 집중투자와 역발상이라는 도구 자체를 선악으로 나누기는 어렵다는 걸 알 수 있다. 같은 무기로 그는 한때 업계 최고의 성과를 냈고, 같은 무기로 이후 뼈아픈 손실을 겪었다. 차이를 만든 건 도구가 아니라, 그 도구를 쓸 때마다 매번 새로 검증해야 했던 ‘이번엔 정말 맞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피터 린치가 ‘자신이 아는 것에 투자하라’고 했을 때, 그리고 버핏이 ‘능력범위를 벗어나지 마라’고 했을 때, 이 두 말에는 공통적으로 겸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자신이 아는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그리고 그 범위 밖으로 나갔을 때 생기는 리스크를 얼마나 정직하게 인정하느냐가 관건이라는 뜻이다. 버코위츠의 상승과 하락은 결국 같은 질문으로 되돌아간다. 확신이 강할수록, 그 확신이 틀렸을 가능성까지 얼마나 계속 의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