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드레 코스톨라니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파리로 건너가 증권가에 발을 들였다. 1929년 대공황 직전까지 그는 이미 파리 금융가에서 이름을 알린 투기자였고, 대공황 국면에서도 공매도로 상당한 수익을 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은 2차대전이었다. 헝가리계 유대인 혈통이었던 코스톨라니는 나치 점령이 임박하자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피신했고, 전쟁이 끝난 뒤에야 다시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전후 파리는 그가 떠나기 전의 파리와는 전혀 다른 도시였다. 전쟁으로 유럽 경제는 초토화되었고, 화폐 가치는 요동쳤으며, 자본시장은 오랫동안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한 상태였다. 코스톨라니는 이 시기에 다시 투자자이자 저술가로서 활동을 재개했는데,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때부터 단순히 시세를 좇는 투기자가 아니라 시장 심리와 경기 순환을 관찰하고 설명하는 사람으로 변모해갔다는 것이다. 그는 전쟁 전후 유럽 여러 시장에서 통화 붕괴, 인플레이션, 자산 가격의 극단적 변동을 직접 겪으면서, 시장이 결코 합리적으로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했다.
돈과 심리, 그리고 순환
코스톨라니가 전후 활동을 재개하면서 주목한 것은 개별 종목의 재무제표가 아니라 ‘돈이 어디로 흘러가는가’였다. 그는 유동성, 즉 시장에 풀린 돈의 양과 그 돈을 쥔 투자자들의 심리 상태가 결합해 가격을 움직인다고 보았다. 이런 관점은 그가 훗날 여러 저서에서 반복해서 설명하는 사이클 이론의 뼈대가 되었다. 시장은 상승과 하락을 오가지만, 그 진폭과 시점을 결정하는 것은 기업의 실적보다는 자금의 이동과 대중의 감정이라는 생각이었다.
달걀 이론이 나온 자리
코스톨라니가 즐겨 설명했던 ‘달걀 이론’은 이런 관찰에서 나온 개념이다. 그는 경기와 금리, 그리고 주가의 관계를 달걀 모양의 타원 궤도로 표현했다. 금리가 낮아지고 유동성이 풀리기 시작하는 국면에서는 돈을 쥔 투자자들이 갈 곳을 찾아 주식시장으로 몰려들면서 상승장이 시작되고, 경기가 과열되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그 자금이 시장을 빠져나가면서 하락 국면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그는 이 순환을 몇 개의 국면으로 나누어, 각 국면마다 시장에 참여하는 투자자의 유형—신중한 소수에서 시작해 뒤늦게 뛰어드는 대중까지—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이 이론이 나온 배경을 이해하려면 코스톨라니가 전후 유럽에서 목격한 것들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통화가 무너지고 자산이 재평가되는 극단적 상황 속에서, 그는 결국 시장을 움직이는 근본 동력이 ‘돈의 양’이라는 확신을 얻었다. 실적이 좋은 기업의 주가도 시중에 돈이 마르면 오르지 못하고, 반대로 별다른 호재가 없어도 유동성이 넘치면 주가는 오른다는 것을 반복해서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투자자들에게 기업 분석보다 먼저 지금이 유동성 사이클의 어느 지점인지를 물어보라고 강조했다.
투기자에서 관찰자로
전후 파리에서 재기한 코스톨라니는 이후 독일어권 언론과 저술을 통해 널리 알려진 인물이 되었다. 그는 스스로를 투자자라기보다 ‘투기자’라 부르길 즐겼는데, 이는 그가 장기 우량주 보유보다는 시장의 흐름과 심리를 읽어내는 데 방점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의 달걀 이론 역시 정교한 계량 모델이라기보다는, 오랜 시장 경험에서 얻은 직관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표현한 것에 가깝다. 그럼에도 이 개념이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금리와 유동성이 주가를 움직이는 큰 배경이라는 그의 통찰이 이후에도 여러 시장 국면에서 되풀이해 확인되었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