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의 객장은 아수라장이었다. 며칠 사이 수백만 명의 투자자가 평생 모은 돈을 잃었고, 창밖으로 몸을 던지는 사람들에 대한 소문이 도시를 떠돌았다.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제시 리버모어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시장이 무너지는 방향에 돈을 걸어두었고, 그 판단은 정확했다.
리버모어는 갑자기 하락에 베팅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몇 달 전부터 시장의 결을 읽고 있었다. 주가는 계속 오르고 있었지만, 그 상승을 뒷받침하는 것은 기업의 실적이 아니라 빚으로 주식을 사는 투기 열풍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돈의 몇 배를 빌려 주식을 샀고, 그 빚은 주가가 조금만 흔들려도 연쇄적으로 무너질 수 있는 구조였다. 리버모어는 이 불균형을 감지했고, 시장의 분위기가 과열에서 균열로 넘어가는 순간을 기다렸다.
그가 정확히 언제, 얼마를 공매도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이 존재하지만, 핵심은 숫자가 아니라 태도에 있었다. 그는 대중이 낙관에 취해 있을 때 홀로 의심했고, 그 의심을 실행에 옮길 만큼의 확신과 자금력을 갖추고 있었다. 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그의 포지션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났다. 당시 그의 순자산은 하루 만에 수백만 달러씩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그는 대공황의 시작점에서 가장 큰 승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문제는 이 승리가 그에게 준 것이 자산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리버모어는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이 시장의 방향을 남들보다 먼저, 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존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전에도 여러 번 시장의 큰 흐름을 맞춰 명성을 쌓은 인물이었지만, 1929년의 성공은 그 확신을 거의 절대적인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자신의 직관과 판단력이 시장 그 자체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이 확신은 이후 그의 삶에 서서히 균열을 만들었다. 시장은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1929년의 붕괴를 예견했던 그 통찰력이 이후의 국면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리버모어는 자신의 과거 성공을 근거로 점점 더 큰 규모의 베팅을 반복했고, 시장이 그의 예상과 다르게 움직일 때마다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개인적인 삶에서도 결혼과 재산을 둘러싼 문제들이 겹치며 그를 압박했다.
결국 1930년대 중반, 리버모어는 파산을 선언했다. 대공황의 시작을 정확히 읽어냈던 그 사람이, 대공황이 만들어낸 긴 침체의 흐름 속에서는 방향을 잃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1940년, 그는 뉴욕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삶이 실패였다는 짧은 문장이 담겨 있었다고 전해진다.
1929년의 그 몇 주는 리버모어의 트레이딩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가 이후 벗어나지 못한 그림자의 시작점이기도 했다. 시장을 이겼다는 경험은 그에게 확신을 주었지만, 그 확신이 겸손을 대체하는 순간부터 그는 이미 다른 종류의 위험 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