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대부조합, 그리고 한 부동산 개발업자
1980년대 미국에는 ‘저축대부조합(Savings and Loan, S&L)’이라 불리는 금융기관이 수천 개 존재했다. 원래 이들은 지역 주민의 예금을 받아 주택담보대출을 내주는 보수적인 기관이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 미국 의회가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S&L은 상업용 부동산, 정크본드, 벤처성 투자 등 훨씬 위험한 자산에 자금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예금은 연방예금보험(FSLIC)으로 보호받았기 때문에, 경영진 입장에서는 위험한 베팅에 나서도 예금자의 이탈 위험이 크지 않은 구조였다.
애리조나의 부동산 개발업자 찰스 키팅(Charles Keating)은 1984년 캘리포니아의 링컨 저축대부조합(Lincoln Savings and Loan)을 인수했다. 그는 정치권과 규제 당국에 폭넓은 인맥을 쌓았고, 링컨 저축대부조합의 모회사인 아메리칸 컨티넨탈(American Continental Corporation, ACC)을 통해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이어갔다.
고위험 자산으로의 전환과 채권 판매 구조
키팅은 인수 직후 링컨의 자산 운용 방식을 크게 바꿨다. 전통적인 주택담보대출 중심에서 벗어나 미개발 토지, 상업용 부동산, 정크본드 등 고위험·고수익 자산에 예금을 집중적으로 투입했다. 규제 완화로 이런 투자가 형식적으로는 가능해졌지만, 이는 S&L 본연의 보수적 자산운용 원칙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모회사 ACC가 발행한 회사채였다. 링컨의 지점들은 예금 대신 원금 보장이 되지 않는 ACC의 무보증 채권을 안전한 상품처럼 판매했다. 창구 직원들이 나이 든 예금자들에게 “예금보다 이율이 높은 안전한 상품”이라고 안내했다는 사실이 이후 소송 과정에서 드러났고, 다수의 고령 투자자가 은퇴자금을 이 채권에 넣었다가 손실을 봤다.
규제 당국의 조사와 ‘키팅 파이브’
1986~87년경 연방주택대부은행위원회(FHLBB) 소속 규제 담당자들이 링컨의 회계 처리와 자산 건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실제 자산가치보다 부풀려진 회계, 관련자 간 순환 거래 등이 조사 대상이 되었다. 이때 키팅은 자신이 정치자금을 후원했던 상원의원 5명—앨런 크랜스턴, 데니스 데콘시니, 존 글렌, 존 매케인, 도널드 리글—에게 규제 조사를 완화해 달라는 취지로 압박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후 ‘키팅 파이브(Keating Five)’로 불리며 상원 윤리위원회 조사를 받았다.
규제 당국의 개입이 지연되는 사이 링컨의 자산 부실은 계속 누적됐고, 1989년 링컨 저축대부조합은 결국 연방 규제 당국에 의해 강제 인수(청산 절차)되었다.
붕괴 이후: 손실, 재판, 그리고 제도 변화
링컨의 파산으로 발생한 손실은 미국 납세자가 부담하는 연방예금보험기금을 통해 메워졌으며, 그 규모는 수십억 달러 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링컨의 무보증 채권에 투자했던 수천 명의 개인 투자자들도 상당한 원금 손실을 입었다. 찰스 키팅은 증권사기와 관련 혐의로 기소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이후 항소심 과정에서 절차상의 문제로 판결 일부가 뒤집혀 재심이 진행됐고, 최종적으로는 유죄를 인정하는 형태로 사건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려졌다. ‘키팅 파이브’ 상원의원들에 대해서는 윤리위원회가 부적절한 처신이 있었다고 지적했지만, 형사처벌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사건은 S&L 산업 전반의 위기, 이른바 ‘저축대부조합 사태’의 상징적 사례로 꼽히며, 이후 미국 금융 규제기관 개편(FHLBB 폐지 및 감독청 신설 등)과 은행·저축기관에 대한 자본건전성 규제 강화로 이어졌다.
점검할 수 있는 신호
- 예금기관 창구에서 판매하는 상품이 예금자보호 대상인지, 아니면 모회사나 계열사가 발행한 무보증 채권·증권인지 반드시 구분해서 확인한다.
- 금융기관의 자산운용이 원래의 사업 성격(예: 주택담보대출 중심 저축기관)에서 벗어나 고위험 자산으로 급격히 옮겨가고 있다면, 그 배경이 되는 규제 환경 변화와 경영진의 인센티브 구조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