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펀드매니저 테리 스미스는 금융업계에서 보기 드문 말을 신조로 삼았다. “좋은 기업을 사라. 과도한 값을 치르지 마라.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마라.” 언뜻 게으른 투자 철학처럼 들리지만, 이 세 문장 안에는 수십 년간 시장을 관찰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냉정한 결론이 담겨 있다.
그는 펀드스미스(Fundsmith)를 설립하기 전, 이미 영국 금융가에서 애널리스트이자 경영자로 긴 이력을 쌓은 인물이었다. 은행 애널리스트로 일하며 기업 회계의 허점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글을 써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증권사 경영에도 참여했다. 그런 그가 뒤늦게, 그것도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원칙으로 자산운용사를 차렸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운 지점이다.
회전율과의 싸움, 펀드스미스의 출발점
2010년 펀드스미스를 설립할 당시 테리 스미스가 겨냥한 것은 화려한 종목 발굴이 아니라 업계의 관행이었다. 많은 액티브 펀드가 잦은 매매로 수수료와 세금을 발생시키면서도, 그 거래가 실제로 수익에 기여하는지는 불분명했다.
그는 이 문제를 뒤집어 생각했다. 매매를 자주 한다는 것은 매번 “이 종목을 팔고 저 종목을 사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을 내린다는 뜻인데, 그런 판단을 정확히 반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처음부터 오래 보유할 수 있는 기업만 골라서, 고른 뒤에는 되도록 건드리지 않는 쪽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기준
펀드스미스의 투자 원칙에서 “좋은 기업”이란 모호한 수식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체크리스트에 가깝다. 공개된 자료와 인터뷰에서 그가 반복해 강조한 기준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많은 자본을 재투자하지 않고도 높은 수익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업 구조
- 경쟁자가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브랜드나 네트워크 같은 구조적 우위
- 경기 순환에 크게 흔들리지 않는 안정적인 현금흐름
- 부채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는 재무 구조
이런 기준을 들이대면 투자 가능한 종목의 폭은 크게 좁아진다. 실제로 펀드스미스의 포트폴리오는 보유 종목 수가 많지 않고, 소비재·헬스케어·기술 분야의 널리 알려진 글로벌 기업 위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려한 신생 기업이나 턴어라운드 스토리는 애초에 후보군에서 배제되는 셈이다.
“과도한 값을 치르지 마라”는 균형감
흥미로운 점은 그가 좋은 기업이라고 해서 아무 가격에나 사들이지는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혀왔다는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사업이라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사면 장기 수익률이 훼손된다는, 가치투자의 오래된 교훈을 그는 버리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싸다”는 이유만으로 평범하거나 질 낮은 기업을 사는 전통적 가치투자 방식에는 거리를 두었다. 품질이 떨어지는 기업은 아무리 저평가되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그 저평가를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실적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고 본 것이다. 품질과 가격, 둘 중 하나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태도가 그의 선구안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의 진짜 의미
“아무것도 하지 마라”는 문구는 종종 오해를 산다. 이는 분석을 게을리하라는 뜻이 아니라, 종목을 고르는 단계에서 이미 충분히 치열하게 고민했으니 그 이후에는 단기적인 소음에 반응해 매매 버튼을 누르지 말라는 의미에 가깝다.
테리 스미스는 공개 서한과 인터뷰에서 시장의 일시적 조정이나 거시 경제 뉴스에 따라 보유 종목을 뒤흔드는 것이 오히려 장기 수익률을 깎아먹는 주된 원인이라고 거듭 지적해왔다. 그의 투자 철학에서 보유 기간은 몇 개월이 아니라 몇 년, 때로는 기업의 경쟁력이 훼손되지 않는 한 무기한에 가깝게 설정된다.
결국 그가 보여준 것은 복잡한 전략이 아니라, 좋은 선택을 한 뒤 그 선택을 믿고 버티는 단순한 인내심이었다. 그리고 그 단순함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수많은 펀드매니저들이 실제로는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