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공황 직후, 월가의 대다수는 여전히 값싸게 거래되는 자산을 찾는 데 몰두해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토머스 로 프라이스 주니어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졌다. “싼 회사가 아니라, 계속 커지는 회사를 사면 어떨까?” 이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성장주 투자’라는 개념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직접 자산운용사를 설립하고 운영한 실무자였다. 그 회사가 지금까지 이어지는 T. 로프라이스(T. Rowe Price)다.
화학도에서 애널리스트로
프라이스는 원래 화학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졸업 후 화학 관련 직장을 구했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았고, 결국 금융업계로 방향을 틀어 증권사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 이력은 그의 투자 스타일에 묘하게 스며든다. 그는 숫자와 재무제표를 감으로 읽지 않고, 실험실에서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듯 기업을 분석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1930년대와 40년대는 대공황의 여파와 2차 세계대전이 겹친 시기였다. 시장 참여자 대부분은 손실의 기억 때문에 안전자산과 저평가 자산에 매달렸다. 프라이스는 이 시기에 오히려 “어떤 산업이 구조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를 묻기 시작했다.
성장주라는 개념을 정립하다
프라이스가 내세운 생각은 비교적 명확했다. 주가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투자하지 말고, 장기간 이익과 매출이 꾸준히 늘어날 수 있는 산업과 기업을 찾아서, 그 기업이 여전히 성장 궤도에 있는 동안 보유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런 기업을 ‘성장주(growth stock)’라고 불렀고, 이 용어 자체를 투자 어휘로 정착시킨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접근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미래가 밝아 보이는 회사”를 고르는 감각적 판단이 아니었다. 그는 기업의 생애주기라는 틀로 성장을 바라봤다.
- 태동기: 시장이 아직 작고 경쟁이 적은 단계
- 성장기: 매출과 이익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단계
- 성숙기: 성장률이 둔화되고 산업이 포화되는 단계
프라이스는 투자자가 할 일은 기업이 성장기에 있는 동안 보유하고, 성숙기로 접어드는 조짐이 보이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것이라고 봤다. 즉 좋은 회사를 영원히 들고 가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가 ‘좋은 성장 국면’에 있는 동안만 함께하는 전략이었다.
매니저 수수료가 아닌 성과 수수료를 택하다
프라이스가 업계 관행과 충돌한 또 다른 지점은 보수 체계였다. 당시 자산운용업계는 운용자산 규모에 비례한 수수료를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이는 운용사가 고객의 수익률보다 자산 규모 자체를 늘리는 데 더 관심을 갖게 만드는 구조였다.
프라이스는 이런 구조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고객의 투자 성과와 보수가 연동되는 체계를 지향했다. 운용사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같은 방향을 보게 만들어야 한다는 신념이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드문 태도였고, 자산운용업이 ‘고객을 위한 수탁자’로서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다.
회사를 떠나며 남긴 마지막 원칙
프라이스는 자신이 세운 T. 로프라이스에서 경영 일선을 떠난 뒤에도 시장과 거리를 두지 않았다. 알려진 바로는 그는 말년에 인플레이션이 장기적으로 주식시장과 투자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고민했고, 자신이 세운 회사의 운용 방향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의견을 냈다고 전해진다.
그는 끝까지 ‘성장을 읽는 눈’을 놓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저평가된 자산을 찾는 것과, 앞으로 커질 자산을 찾는 것은 전혀 다른 질문이라는 것을 가장 먼저 체계화한 사람으로서, 그의 이름은 지금도 수많은 운용사의 투자 철학 한편에 조용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