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 — Palantir Technologies, Founders Fund
일론 머스크 — SpaceX, Tesla, X(구 Twitter)
리드 호프만 — LinkedIn, Greylock Partners
맥스 레브친 — Affirm, Slide, Yelp 투자
데이비드 삭스 — Yammer(MS에 $1.2B 매각), Craft Ventures
루엘로프 보타 — Sequoia Capital 파트너
스티브 천 · 채드 허리 · 자웨드 카림 — YouTube(Google에 $1.65B 매각)
제레미 스토펄만 · 러셀 시몬스 — Yelp
2002년 여름, 이베이(eBay)가 페이팔을 15억 달러에 인수했다. 회사를 팔고 나온 창업자들은 수십억 원씩 주머니에 넣고 고급 레스토랑 토스카(Tosca)에 모였다. 겉으로 보면 성공적인 엑시트 파티. 하지만 이건 끝이 아니라,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창업 신화의 시작점이었다.
이들은 LinkedIn, Palantir Technologies, SpaceX, YouTube, Yelp, Yammer 같은 회사들을 연달아 창업하며 실리콘밸리를 통째로 바꿔놓았다. 이 그룹이 너무 무섭도록 성공적이어서, 언론이 붙인 별명이 바로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다.
그렇다면 이들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리고 페이팔 이전에는 무엇을 하던 사람들이었을까?
모든 것의 시작: 팜파일럿과 암호화 소프트웨어
1998년 12월, 맥스 레브친(Max Levchin), 피터 틸(Peter Thiel), 루크 노섹(Luke Nosek)이 컨피니티(Confinity)를 공동 창업했다. 처음 목표는 핸드헬드 기기용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이었다.
그런데 잠깐, 이들이 만나기까지의 과정이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컴퓨터 과학자 맥스 레브친은 졸업 직전에 작은 스타트업을 마이크로소프트에 10만 달러에 팔았다. 돈이 들어오길 기다리는 사이, 그는 사실상 무일푼 상태로 실리콘밸리로 건너와 친구 집에 얹혀 살고 있었다. 그러다 스탠퍼드 대학의 한 강의를 들으러 갔는데, 강연자가 바로 피터 틸이었다.
피터 틸은 독일에서 태어나 한 살 때 미국으로 왔다. 스탠퍼드를 졸업한 뒤 법원 서기, 증권 변호사, 연설문 작가, 크레디트 스위스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를 거쳤다. 1996년에는 자신의 헤지펀드 틸 캐피털 매니지먼트를 세웠다.
강의가 끝난 후 레브친은 틸에게 다가갔다. 아이디어가 있다고. 핸드헬드 기기에 암호화된 데이터를 저장하는 보안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싶다고. 틸은 이 아이디어가 흥미롭다 생각하여 초기 자금 1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 약속했고, 곧 공동창업자로 합류했다.
이렇게 실리콘밸리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파트너십이 시작됐다.
1998년, 레브친과 틸은 필드링크(Fieldlink)라는 보안 회사를 창업했다. 팜파일럿 같은 PDA 기기에 암호화된 데이터를 저장하고, 이를 “디지털 지갑”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표였다. 회사 이름을 컨피니티로 바꾼 뒤 이메일로 돈을 보내는 결제 서비스를 개발했고, 이것이 바로 페이팔이 되었다.
라이벌의 합류: 일론 머스크와 X.com
페이팔 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바로 일론 머스크.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 태생의 머스크는 1989년 캐나다로 이민했고, 199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은 뒤 캘리포니아로 건너왔다. 1995년에는 형제와 함께 Zip2라는 온라인 비즈니스 디렉토리 회사를 공동 창업했다.
Zip2는 오프라인 전화번호부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려는 사업이었는데, 구글이 등장하기도 전인 당시에는 상당히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1999년 Zip2를 Compaq에 3억 달러 이상에 매각했다.
그 수익으로 머스크는 X.com이라는 온라인 금융 서비스 회사를 세웠다. 창업 초기 2개월 만에 20만 명이 넘는 가입자를 끌어모을 정도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당시 같은 팔로알토에서 컨피니티와 X.com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회사가 서로 싸우다 같이 망할 판이 되자, 결국 두 라이벌은 2000년에 합병해 페이팔이라는 이름의 회사가 됐다.
합병 후 머스크가 CEO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전설적인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머스크는 CEO가 된 뒤 회사의 기술 인프라를 유닉스(Unix)에서 마이크로소프트 플랫폼으로 전환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결정은 유닉스 신봉자였던 레브친과 개발팀의 강렬한 반발을 불렀다. 결국 머스크가 호주로 첫 휴가를 떠난 사이, 이사회는 그를 해임하고 틸을 CEO로 복귀시켰다.
“그게 휴가의 문제야”라고 머스크는 나중에 농담처럼 말했다고 한다. 비행기 타고 떠난 사이에 쿠데타가 일어났으니.
이베이 매각, 그리고 “폭발”
페이팔은 2002년 2월 상장에 성공했고, 같은 해 10월 이베이에 15억 달러에 인수됐다.
최대 주주였던 머스크는 지분 11.72%로 약 1억 7,580만 달러를 손에 쥐었다. 틸은 지분 3.7%로 5,500만 달러, 레브친은 2.3%로 3,400만 달러를 받았다.
그런데 이베이 입장에서 이 인수는 좀 아이러니한 결말을 낳았다. 현재 이베이는 약 1억 5,900만 명의 사용자와 32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이베이에서 분사한 페이팔은 4억 명이 넘는 사용자와 1,280억 달러의 시가총액을 자랑한다. 전 세계 인구 20명 중 1명이 페이팔을 사용하는 셈이다.
매각 후 이베이 문화에 적응 못 한 직원들은 속속 회사를 떠났다. 페이팔 창업 초기 50명의 직원 중 4년 안에 12명만 남고 모두 떠났다. 하지만 이들은 흩어지지 않았다. 서로 연락하고, 투자하고, 다시 창업했다.
그렇게 “페이팔 마피아”가 탄생했다.
돈(Don): 피터 틸 —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투자자
페이팔 매각으로 5,500만 달러를 손에 쥔 피터 틸이 제일 먼저 한 것은 뭘까?
틸은 헤지펀드 클라리움 캐피털(Clarium Capital)을 설립했고, 페이스북이 갓 시작한 스타트업이던 2004년에 50만 달러를 투자해 10.2%의 지분을 획득했다. 이 투자는 훗날 수십억 달러 이상의 가치가 됐다.
더 나아가 2003년에는 팔란티르 테크놀로지(Palantir Technologies)를 공동 창업했다. 이 회사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미 국방부와 정보기관, 대기업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됐다.
그리고 창업자들끼리 서로 투자하는 “페이팔 마피아 투자 네트워크”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슬라이드(Slide), 옐프(Yelp), 링크드인(LinkedIn)에 투자하고, 루크 노섹, 켄 하워리와 함께 파운더스 펀드(Founders Fund)를 설립했다. 어시스턴트가 식당을 여는 것도 지원할 정도로, 인간적인 네트워크의 중심이었다.
그의 2014년 저서 《제로 투 원(Zero to One)》은 창업자들의 바이블이 됐다.
그리고 2025년, 틸의 제자인 JD 밴스가 미국 부통령이 되면서, 페이팔 마피아는 정치권까지 진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추방당한 자의 복수: 일론 머스크
페이팔에서 쫓겨났지만, 이 남자에겐 그게 오히려 축복이었다.
2002년 이베이가 페이팔을 인수하자 최대 주주였던 머스크는 약 1억 7,600만 달러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그 자금 중 1억 달러를 들여 SpaceX를 창업했다.
2004년에는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에 초기 투자자로 참여해 650만 달러를 투자했고, 2008년에는 CEO이자 수석 엔지니어로 취임했다.
그 외에도 Neuralink(뇌-컴퓨터 인터페이스), The Boring Company(터널 굴착), OpenAI 공동 창업, 2022년 Twitter 인수 및 X로 리브랜딩까지. 2025년 기준으로 머스크는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으로, 순자산이 7,500억 달러에 달한다.
재미있는 건,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X.com이라는 도메인을 페이팔에서 다시 사들였다는 점이다. 자신의 첫 회사 이름으로 돌아온 셈이다.
연결의 달인: 리드 호프만
리드 호프만은 스탠퍼드 출신으로 애플을 거쳐 페이팔에 합류했다. 페이팔에서 사업 부문 부사장(EVP)으로 일하며 이베이와의 협상에서 회사를 지키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페이팔을 떠난 뒤 그가 한 일은 “직업인들의 페이스북”을 만드는 것이었다. 링크드인은 훗날 마이크로소프트에 262억 달러에 인수됐고, 호프만은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에 합류했다.
투자자로서도 페이스북, Airbnb 초기 투자, 그리고 AI 붐 이전에 OpenAI의 창립 투자자로 참여했다. 그는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저서로도 유명하며, 스타트업의 폭발적 성장 전략을 체계화했다.
페이팔 마피아 내에서 정치적으로는 홀로 민주당 지지자로, 틸·머스크·삭스의 트럼프 지지와 반대편에 서며 내부적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안티프라우드의 귀재: 맥스 레브친
우크라이나 키이우 태생의 레브친은 1991년 시카고로 이민했고,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샴페인(UIUC)에서 컴퓨터 사이언스를 전공했다. 그는 페이팔의 CTO로서 회사의 기술적 근간을 쌓았고, 특히 사기 방지 기술을 개발해 회사를 살렸다. 우리가 지금 흔히 접하는 CAPTCHA(캡차)의 최초 상업적 구현인 가우제벡-레브친 테스트의 공동 개발자이기도 하다.
페이팔 이후 레브친은 여러 곳에 발을 뻗었다. 2004년 소셜 미디어용 사진 공유 서비스 Slide를 창업해 2010년 구글에 1억 8,200만 달러에 매각했다. 2012년에는 금융기술 회사 Affirm을 창업해 “지금 사고 나중에 갚는(Buy Now, Pay Later)” 서비스를 개척했다. Affirm은 2021년 IPO를 통해 그의 지분 가치가 약 25억 달러에 달하게 됐다. Yelp의 초기 투자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도 활동했다.
유튜브를 만든 사람들: 스티브 천·채드 허리·자웨드 카림
스티브 천, 채드 허리, 자웨드 카림은 페이팔에서 엔지니어와 웹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떠난 뒤 YouTube를 공동 창업했다. 세 사람은 2005년 유튜브를 창업했고, 2006년 구글이 16억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페이팔 마피아 역사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빠른 “대박 엑시트”였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사람이 2007년 포춘 지의 그 유명한 페이팔 마피아 사진 촬영에 나타나지 않은 이유였다. 당시 유튜브를 인수한 구글이 “그 사진에 나오지 말라”고 조언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옐프, 삭스의 야머, 그리고 실리콘밸리의 완성
페이팔 엔지니어 출신인 러셀 시몬스와 부사장 제레미 스토펄만이 공동 창업한 옐프(Yelp)는 지역 상권 리뷰 플랫폼의 대명사가 됐다.
데이비드 삭스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으로 페이팔 COO를 지냈고, 페이팔 매각 후 기업용 소셜 네트워크 야머(Yammer)를 창업했다. 야머는 SaaS 기업 역사상 가장 빠른 “창업부터 10억 달러 엑시트”를 기록하며 마이크로소프트에 12억 달러에 팔렸다. 삭스는 현재 All-In 팟캐스트의 공동 진행자로도 유명하며,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백악관 AI·암호화폐 책임자로 임명했다.
루엘로프 보타는 페이팔의 CFO로 일하다가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털 중 하나인 세쿼이아 캐피털(Sequoia Capital)의 파트너로 합류, 이후 실리콘밸리의 가장 영향력 있는 VC 중 한 명이 됐다.
그래서, 왜 이들이 특별한가?
숫자가 말해준다. 이들이 창업에 참여한 회사들의 시가총액을 합산하면 테슬라, 링크드인, 팔란티르, SpaceX, 옐프, 유튜브, 야머 등이 총 수십 조 원 규모의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구글의 경우 2만~3만 명의 직원 중 유니콘 기업이 1~2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데, 페이팔은 단 수십 명에서 이 결과를 냈다. 비율로 따지면 페이팔의 성공률이 구글보다 350배 높다는 계산이 나온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말 자체는 2007년 포춘(Fortune) 지의 표지 기사에서 탄생했다. 13명의 페이팔 동문이 소프라노 스타일의 마피아 복장을 하고 샌프란시스코의 레스토랑 토스카에서 찍은 그 사진은 지금도 전설적인 이미지로 남아 있다.
그 사진에 머스크는 없었다. 시상식이 있어서 오지 못했다고 한다. 쿠데타로 쫓겨난 사람이 가장 크게 성공했으니, 어쩌면 그 사진에 없는 게 더 어울리는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페이팔이라는 회사 하나가, 그 안에서 함께 싸우고 갈등하고 웃었던 사람들이, 세상을 이렇게 바꿔놓았다. 스마트폰으로 결제하고, 유튜브를 보고, 링크드인으로 취직하고, 테슬라를 시승하는 오늘 하루가, 사실은 팜파일럿에 돈을 빔(Beam)하려 했던 한 우크라이나 이민자 청년과 스탠퍼드 강연자의 만남에서 시작됐다는 게 놀랍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