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몬트리올에 지아르디니캐피털(Giverny Capital)이라는 운용사를 이끄는 프랑수아 로숑이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워런 버핏과 필립 피셔의 영향을 깊이 받은 장기 성장가치 투자자로 알려져 있고, 무엇보다 매년 발행하는 연례 서한에서 자신의 손실과 오판을 가감 없이 공개하는 것으로 투자자들 사이에서 신뢰를 얻어왔다. 이 글에서는 화려한 수익률 자랑이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기록하고…
펀드매니저의 성과는 보통 얼마나 좋은 종목을 골랐느냐로 판가름 난다. 그런데 FPA 캐피털을 이끌었던 로버트 로드리게스는 정반대의 방식으로 이름을 남겼다. 그는 시장이 위험해 보일 때 오히려 아무것도 사지 않는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이 그를 전설로 만들었다. 주식을 팔고 현금을 쌓은 펀드매니저 로드리게스가 유명해진 계기는 2000년대 중반, 그가 운용하던 FPA…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대 초 닷컴 버블, 이런 시기마다 미국 밖 시장에서 버려진 자산을 주워 담던 프랑스 출신 펀드매니저가 있었다. 장마리 에베이야르(Jean-Marie Eveillard)는 퍼스트이글 글로벌 펀드를 운용하며, 남들이 손절하고 떠난 자리에서 오히려 가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오랜 기간 시장을 이겼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화려한 수익률 자체보다, 남들과 반대로…
월가에는 화려한 스타 매니저들이 넘쳐나지만, 트위디브라운(Tweedy, Browne)이라는 운용사는 늘 조용한 편이었다. 그 조용함 속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치투자 원칙을 가장 우직하게 지켜낸 사람이 크리스토퍼 브라운이다. 그는 화려한 언변이나 예측으로 이름을 알린 사람이 아니라, 숫자와 원칙을 끝까지 믿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레이엄과의 특별한 인연 트위디브라운은 원래 벤저민 그레이엄과 그의 제자들이 거래하던…
1970년대 인도에서 캐나다로 건너온 한 청년이 보험회사를 인수해, 훗날 사람들이 그를 두고 ‘캐나다의 워런 버핏’이라 부르게 만들었다. 프렘 왓사(Prem Watsa)의 이야기는 화려한 성공담이라기보다, 남들이 다 맞다고 할 때 홀로 다른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에 가깝다. 보험을 산 게 아니라 ‘자금’을 산 것이었다 왓사가 1985년 무렵 페어팩스 파이낸셜(Fairfax…
피터 컨딜은 캐나다 출신의 투자자로, 벤저민 그레이엄식 딥밸류(deep value) 투자를 극단까지 밀어붙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찾던 회사는 단순히 저평가된 주식이 아니라, 회사가 가진 현금과 유가증권만 팔아도 시가총액을 넘어서는, 그야말로 사업 자체는 공짜로 얹혀 오는 기업들이었다. 이런 접근은 화려하지 않다. 성장 스토리도 없고,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요소도…
2000년대 초 뉴욕의 한 젊은 펀드매니저가 갑자기 스위스 취리히로 사무실을 옮겼다. 월가의 화려한 네트워크와 정보의 중심에서 스스로 걸어 나온 셈이었다. 그의 이름은 가이 스페어(Guy Spier). 아쿠아마린 펀드(Aquamarine Fund)를 운용하던 그가 월가를 떠난 이유는 단순했다. 그곳에 계속 있으면 자신이 점점 다른 사람이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스페어는 옥스퍼드를 나와…
찰리 멍거는 평생 남을 잘 믿지 않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말년에 자기 가족의 자산 운용을 통째로 맡긴 인물이 있다. 중국 출신의 투자자 리 루다.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자기 돈을 넘긴다는 것, 그것도 자기가 세운 원칙을 벗어난 방식으로 운용해도 좋다고 허락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일이었다. 톈안먼…
1990년대 중반, IT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던 인도 출신 이민자 모니시 파브라이는 어느 날 워런 버핏의 이야기를 접했다. 버핏이 오랜 기간 시장 평균을 크게 웃도는 성과를 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그 방법을 숨기지 않고 공개적으로 설명해왔다는 사실이 그를 사로잡았다. 파브라이는 공학과 창업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이었지만, 투자에 관해서는 스스로 새로운…
2002년, 뉴욕의 한 자선 만찬 자리에서 한 젊은 헤지펀드 매니저가 마이크를 잡았다. 이름은 데이비드 아인혼. 그는 그린라이트캐피털이라는 자신의 펀드를 통해 이미 몇 년째 가치투자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었지만, 이 날의 발언은 조금 결이 달랐다. 그는 청중 앞에서 올렌 파이낸셜이라는 상장사의 회계 처리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자선 행사에서 나온…
2010년 무렵 미국 펀드 업계에서 브루스 버코위츠라는 이름은 꽤 무겁게 다뤄졌다. 그가 운용하던 페어홀름 펀드는 한동안 동종 카테고리 대비 압도적인 성과를 냈고, 모닝스타 같은 평가기관에서 ‘올해의 매니저’급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그 성공 자체보다, 그 성공을 만든 방식이 그대로 다음 위기의 씨앗이 되었다는…
월스트리트에서 마티 휘트먼이라는 이름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성장주의 스토리에 열광하지도 않았고, 차트를 들여다보며 매매 타이밍을 재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재무상태표를 오래, 그리고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다. 서드애비뉴 밸류 펀드를 이끌며 그가 쌓아 올린 명성은 손익계산서의 화려한 성장률이 아니라, 기업이 파산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가라는 훨씬 근본적인 질문에서 나왔다.…
1980년대 뉴욕의 투자 업계에서 파산이라는 단어는 대체로 회피의 대상이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회사, 채권자들이 서로 물어뜯는 구조조정 협상, 주식이 거의 휴지 조각처럼 거래되는 기업들. 대부분의 펀드매니저는 그런 종목을 포트폴리오에서 지우고 싶어 했다. 마이클 프라이스는 반대로 그런 자리로 걸어 들어갔다. 그는 뮤추얼시리즈펀드(Mutual Series)라는, 당시 기준으로는 화려하지 않았던 밸류펀드 운용사를 맡아…
1990년대 초, 월가에서 부실채권(distressed debt)이라는 영역은 여전히 변두리 취급을 받고 있었다. 파산 직전이거나 이미 파산한 기업의 채권을 사들인다는 발상 자체가, 당시 주류 투자자들 눈에는 위험을 자초하는 일처럼 보였다. 하워드 막스는 바로 그 변두리에서 오크트리캐피털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자신만의 투자 철학을 구체화해 나갔다. 막스의 이력은 사실 화려한 출발과는 거리가 있었다.…
1985년, 조엘 그린블랫은 고담캐피털이라는 작은 헤지펀드를 시작했다. 그는 와튼스쿨을 나온 뒤 월가에서 일하며 한 가지 사실을 눈치챘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회사의 실적 발표나 신제품 소식처럼 눈에 잘 들어오는 뉴스에 몰려들지만, 정작 진짜 기회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는 구석진 곳, 이를테면 스핀오프나 파산, 합병 같은 ‘특수상황’ 속에 숨어 있다는 것이었다.…
1982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갓 졸업한 세스 클라먼은 바우포스트 그룹이라는 작은 투자회사를 만든다. 화려한 월가의 트레이딩 데스크가 아니라 보스턴이라는, 뉴욕과는 다소 거리를 둔 도시에서였다. 이 지리적 거리는 상징적이었다. 클라먼은 이후 40년 가까이 시장의 소음에서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떨어져 있는 것을 택한 사람으로 알려지게 된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화려한 수익률…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를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한때 이 둘과 나란히 거론되던 세 번째 이름이 있었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릭 게린(Rick Guerin)이다. 멍거와 함께 여러 투자를 함께했고, 버핏이 신뢰하는 파트너 그룹 안에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설적인 투자자’를 이야기할 때 버핏과 멍거는…
1969년, 워런 버핏은 자신이 운용하던 버핏 파트너십을 청산하기로 결정했다. 시장이 지나치게 과열되어 있고 마땅한 투자 대상을 찾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 문제는 그를 믿고 돈을 맡겼던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었다. 파트너십이 사라지면 이들은 갑자기 자기 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막막해질 상황이었다. 버핏은 이들에게 그냥 돈을 돌려주고 끝내는 대신, 신뢰할 수…
1929년 뉴욕. 주식시장이 무너지던 그해, 어빙 칸은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대공황이 수많은 투자자들의 자산과 신념을 동시에 무너뜨리던 시기에, 한 청년은 오히려 이 붕괴 속에서 어떤 원칙이 무너지지 않았는지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훗날 어빙 칸은 그레이엄의 조교가 되었고, 그 유명한 저작 《증권분석》의 집필을 돕는 사람 중…
뉴욕 월스트리트 어딘가, 창문도 제대로 없는 작은 사무실 한 칸. 책상 하나, 파일 캐비닛 몇 개, 그리고 주가 시세를 훑어보는 남자 한 명. 화려한 트레이딩 데스크도, 애널리스트 군단도 없었다. 월터 슐로스는 그런 방식으로 반세기 가까이 돈을 굴렸다. 그가 이 세계에 발을 들인 계기는 벤저민 그레이엄이었다. 슐로스는 정규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