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만들어 월가에서 손꼽히는 성과를 올리던 사람이 어느 날 조용히 자리를 내려놓았다. 짐 로저스 이야기다. 그는 돈을 더 버는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세상을 직접 보러 떠났다. 이 글은 그가 왜 펀드를 떠났고, 그 여행이 그의 투자 방식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퀀텀펀드, 그리고 조기…
월스트리트에는 “가치투자의 전설”로 불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지만, 마이클 스타인하트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기업의 펀더멘털만큼이나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와 포지셔닝을 읽는 데 집중했던 헤지펀드 매니저였고, 스타인하트파트너스를 통해 수십 년에 걸쳐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글에서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시장을 바라봤는지, 그리고 그 접근이 왜 당시로서는…
전쟁이 터지기 전, 외교관들의 발언이 바뀌기 전, 위성 사진 속 군대의 움직임이 보이기 전 — 어떤 투자자들은 뉴스가 되기 전의 신호를 먼저 읽는다. 루이스 베이컨은 그런 식으로 시장을 봤던 사람이다. 그가 설립한 무어캐피털매니지먼트는 지정학적 사건을 가격으로 바꿔 읽는 능력으로 월가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이 글은 베이컨이라는 한 인물이…
브루스 코브너는 화려한 이력으로 시작한 투자자가 아니다. 정치학을 공부하고 택시 운전으로 생계를 꾸리던 평범한 청년이 어떻게 캑스턴어소시에이츠를 세워 글로벌 매크로 트레이딩의 한 축이 되었는지, 그 전환점에는 한 번의 뼈아픈 실패가 있었다. 대두 선물에서 배운 첫 번째 교훈 코브너가 처음 선물 시장에 발을 들인 것은 1970년대 후반, 신용카드로 마련한…
1992년 가을, 영국 중앙은행은 자국 통화를 지키기 위해 금리를 끌어올리고 외환보유고를 쏟아붓고 있었다. 그 반대편에는 퀀텀펀드의 실무를 이끌던 한 매니저가 있었다. 조지 소로스의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이 공격의 실제 설계자는 스탠리 드러켄밀러였다. 이 글은 그가 듀케인캐피털을 운영하며 어떻게 소로스와 함께 일하게 되었고, 파운드화 공격이라는 한 번의 베팅에서 어떤…
1987년 10월, 뉴욕증시는 단 하루 만에 20%가 넘게 무너졌다. 훗날 ‘블랙먼데이’라 불리는 이 사건으로 수많은 투자자가 전 재산을 잃었지만, 반대로 이 폭락을 미리 내다보고 엄청난 수익을 거둔 트레이더가 있었다. 바로 튜더인베스트먼트의 창업자, 폴 튜더 존스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예측이 맞았다’는 결과 때문이 아니다. 그가 어떤 근거로,…
1970년대 중반, 월가의 자금은 대부분 누구나 아는 대형 우량주로 몰려 있었다. 애널리스트들도 리포트 한 줄 쓰지 않는 작은 회사들, 거래량이 적어 사고팔기도 번거로운 종목들은 투자의 변두리 취급을 받았다. 척 로이스는 바로 그 변두리에 평생을 걸었다. 그는 화려한 스토리나 급등주를 좇는 대신, 재무제표를 뜯어보고 회사가 가진 자산과 현금흐름에 비해…
토머스 러소는 워런 버핏이나 피터 린치만큼 대중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하지만 가드너러소앤가드너라는 운용사를 통해 네슬레, 하이네켄, 유니레버 같은 소비재 기업들을 수십 년 단위로 보유해온 그의 방식은, 월가의 빠른 회전율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결의 투자 철학을 보여준다. 그가 남긴 표현 중 가장 유명한 것은 “고통을 견디는 역량(capacity to suffer)”이다.…
월스트리트가 화려한 언변과 비전으로 투자자를 설득하던 시절, 헨리 싱글턴은 거의 말을 하지 않는 경영자였다. MIT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숫자와 확률로 세상을 바라봤고, 텔레다인이라는 복합기업을 이끌며 정작 회사의 성장 스토리를 떠벌리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대신 그는 자사주 매입이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도구를 통해 주주가치를 쌓아 올렸다. 복합기업 전성기와…
워런 버핏이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보험 플로트(float)로 주식을 사 모았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같은 모델을 훨씬 작은 규모로, 훨씬 덜 유명하게 수십 년간 실행해온 사람이 있다. 마클(Markel Corporation)의 투자 책임자였던 톰 게이너의 이야기다. 보험회사가 왜 주식을 사는가 보험회사는 고객에게 보험료를 먼저 받고, 사고가 나면 나중에 보험금을…
월스트리트에서 ‘분기 실적’이라는 단어는 거의 종교적인 무게를 가진다. 그런데 배런캐피털을 이끄는 론 배런은 처음부터 이 흐름에 등을 돌린 사람이었다. 그는 한 기업을 사면 수년, 때로는 수십 년을 들고 간다. 이 글은 그 고집스러운 보유 방식이 어디서 왔고, 왜 지금도 유효한 이야기로 남아 있는지를 따라가 본다. 증권사 애널리스트에서 자산운용사…
수백 개 종목을 분산해 담는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 척 아크레(Chuck Akre)는 평생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종목에 집중했다. 그가 만든 개념인 ‘컴파운딩 머신(compounding machine)’은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좋은 사업을 찾아 오래 보유하면 시간이 알아서 돈을 불려준다는 단순한 믿음에서 출발했다. 이 글은 그가 어떤 생각의 틀로 투자를 했는지, 그리고 그…
영국 런던의 펀드매니저 테리 스미스는 금융업계에서 보기 드문 말을 신조로 삼았다. “좋은 기업을 사라. 과도한 값을 치르지 마라.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마라.” 언뜻 게으른 투자 철학처럼 들리지만, 이 세 문장 안에는 수십 년간 시장을 관찰한 사람만이 내릴 수 있는 냉정한 결론이 담겨 있다. 그는 펀드스미스(Fundsmith)를 설립하기 전, 이미…
런던의 작은 사무실에서, 한 펀드매니저가 투자자들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우리는 당분간 전화를 받지 않겠습니다.” 니컬러스 슬립과 그의 파트너 자크 지누아는 노마드 인베스트먼트 파트너십을 운영하며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시장의 소음을 차단하고, 몇 안 되는 기업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는 쪽을 택한 것이다. 이 글은 그가 어떤 생각으로 아마존과…
증권사 브로커로 일하던 한 청년이 수백 개 종목의 과거 주가 차트를 일일이 손으로 그려보다가, 크게 오른 종목들에는 오르기 직전 공통된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했다. 이 관찰에서 출발해 그는 나중에 CAN SLIM이라는 이름의 투자 기법을 만들고, 금융 정보를 다루는 신문까지 직접 창간하게 된다. 윌리엄 오닐의 이야기다. 브로커에서 리서처로 오닐은…
뉴욕주 정부에서 일하던 평범한 공무원이 은퇴 후 수억 달러대 자산가가 된 이야기가 있다. 셸비 컬럼 데이비스는 화려한 트레이딩 기술이 아니라, 저평가된 보험주를 사서 수십 년간 들고 있는 단순한 방식으로 이 결과를 만들었다. 그의 삶은 복리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주는 드문 실제 사례로 꼽힌다. 늦은 출발, 그러나 명확한 확신…
1964년부터 1995년까지 뱅가드 윈저 펀드를 이끈 존 네프는 화려한 성장주 대신 저PER주, 즉 시장이 외면한 싸구려 주식들을 꾸준히 사들였다. 그 결과 그가 펀드를 운용한 31년 동안 윈저 펀드의 누적 수익률은 S&P 500 지수를 크게 앞섰다고 알려져 있다.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특별한 비밀 공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지루할…
1896년에 태어나 101세까지 산 사람, 그리고 같은 펀드를 1928년부터 1983년까지 운용한 사람. 필립 캐럿의 이력을 숫자로만 적어도 이미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가 남긴 건 화려한 수익률 신화가 아니라, 시장이 몇 번이고 무너지는 걸 직접 겪으면서도 자리를 지킨 사람의 태도였다. 파이오니어 펀드의 시작 캐럿은 하버드를 나와 MIT에서 화학을 공부하다가 투자로…
1930년대 대공황 직후, 월가의 대다수는 여전히 값싸게 거래되는 자산을 찾는 데 몰두해 있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토머스 로 프라이스 주니어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졌다. “싼 회사가 아니라, 계속 커지는 회사를 사면 어떨까?” 이 단순한 발상의 전환이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쓰는 ‘성장주 투자’라는 개념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이론가가 아니라 직접 자산운용사를…
1970년대 초,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는 지금 돌아봐도 기이할 정도였다. 이른바 ‘니프티 피프티(Nifty Fifty)’라 불리던 우량 성장주 50개 종목에 돈이 몰렸고, 사람들은 “이 회사들은 어떤 가격에 사도 괜찮다”고 믿었다. 그 믿음이 깨지기 시작할 무렵, 캐나다 출신의 한 애널리스트는 정반대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모두가 사랑하는 주식 말고, 모두가 버린 주식은 어떨까.…